나라 요시토모_내 서랍 깊은 곳에서
 
 

전시회 관람을 위해 일본 문화원에 들렸을 때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을 처음 접하였다. 그것은 봉제인형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끝이 뾰족한 칼을 쥐고 서있는 포스터였는데, 저 작고 귀여운 손으로 무슨 일을 낼까 싶기도 하여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있다.

*** 로댕 갤러리 전시장 입구에는 작은 목조건물을 지어 작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였다. 표를 내면서 받은 팜플렛에는 그 건물의 발코니에 올라서면 뜻밖의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적혀있어 그것이 무엇일까 무척 궁금하였다. 위태로워 보이는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발코니에 오르니 로댕의 <지옥의 문>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. 이 갑작스런 지옥과의 조우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. 고통으로 튀어오르고 이내 추락하는 검은 육체들을 보면서 나는 이 어둡고 무거운 문을 밀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인 것만 같은 기분에 온통 사로잡혔다.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채 계단을 내려왔다. 그들이 기획한 바가 이런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5,000원짜리 표를 구입하고 지옥의 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 오늘의 경험을 나는 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.